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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냥 술이나 한 잔 해요."
A씨(20·여)의 사심 가득한 범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A씨는 SNS 채팅 애플리케이션으로 알게된 유부남 B씨(43)에게 돈을 대가로 하는 성매매 이른바 조건만남을 제안했으나, 액수 문제로 무산되자 단순한 술자리로 만남의 이유를 바꿨다.
성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A씨의 이러한 만남 요구의 이면에는 다른 목적이 숨어 있었다.
B씨와의 채팅 중 B씨가 다량의 암호화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를 빼앗고 싶은 마음에 범행을 계획한 것.
이러한 사실을 모르던 B씨는 만남을 수락했다. A씨와 채팅으로 알게 된 지 이틀째 되던 날이다.
두 사람은 지난해 6월10일 새벽 경기 용인시의 한 모텔에서 만나 술자리를 가졌다. A씨는 암호화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B씨에게 5만원을 이체한 뒤 특정 암호화폐를 구매하자고 했다.
B씨는 휴대전화로 암호화폐 사이트에 접속했고, A씨를 이를 눈여겨봤다. B씨가 1억원이 넘는 가치의 암호화폐를 보유한 사실도 확인했다.
애초 암호화폐를 빼앗으려는 목적으로 B씨에게 접근한 A씨는 이때 B씨 휴대전화 잠금패턴을 머릿속에 저장했다.
아침에 모텔을 나선 A씨는 B씨에게 다시 만날 것을 제안했고, 둘은 그날 밤 재차 '모텔 만남'을 약속했다.
A씨는 범행 실행을 위해 수면제 성분의 약을 처방받은 뒤 음료수에 이를 탄 후 약속장소로 향했다.
B씨는 아무런 의심 없이 술과 함께 A씨가 건넨 음료수를 마셨고,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A씨는 전날의 기억을 되살려 B씨 휴대전화 잠금을 해제했다. 이어 1억1100여만원 상당 자산의 암호화폐를 자신의 계정으로 이체되도록 입력한 뒤 B씨의 손가락으로 지문 인증을 해 그의 자산을 빼돌렸다.
다음날 잠에서 깬 B씨는 암호화폐가 이체된 사실을 알고 A씨를 추궁했다.
A씨는 그러나 당당했다. B씨가 잠들었을 때 B씨 휴대전화에서 가족 연락처 등을 저장해뒀던 A씨는 '가정과 직장에 성매매한 사실을 까발리겠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내는 등 19차례에 걸쳐 B씨를 협박했다. "신고할 거면 하라"는 말과 함께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B씨는 이 같은 피해사실을 경찰에 알렸으나, A씨는 경찰 조사에서도 'B씨가 성폭행하려 했고, 그에 대한 합의금 명목으로 암호화폐를 받은 것'이라며 거짓 진술을 했다.
A씨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범행 과정과 경위, 이득 규모를 보면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A씨가 과거 성인남성과 성매매와 관련한 대화를 나눈 다음 이를 빌미로 협박해 돈을 갈취하거나, 성매매 이후 상대가 잠이 든 사이 지갑을 훔치는 등의 범죄로 소년보호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다는 점도 눈여겨 봤다.
재판부는 "소년시절의 잘못된 성행과 습관을 고치지 못한 채 결국 더욱 중대한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 또 수사 초기에는 단순히 범행을 부인하는 것을 넘어 허위진술을 함으로써 B씨를 무고하고 수사에 혼선을 초래하기까지 해 비난가능성이 크다"며 A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징역5년은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8월 '부당하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사진] 픽사베이, 온라인커뮤니티